미국 회사 첫경험기 4

2024년 2월, 미국의 개발자 大 해고 시대에 어렵사리 생애 첫 미국 회사로 이직했고,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처음 경험하는 미국 회사에서의 이모저모를 가볍게 기록해본다.

미국 회사 첫경험기 4
미국 회사 취업 전까지의 이야기는 매년 작성한 연말 회고 글들 참고

지난 이야기 👇

미국 회사 첫경험기 3
2024년 2월, 미국의 개발자 大 해고 시대에 어렵사리 생애 첫 미국 회사로 이직했고,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처음 경험하는 미국 회사에서의 이모저모를 가볍게 기록해본다.

💌 의외로 정이 있네?

입사 얼마 후의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내 책상에 편지지가 놓여있었다. 곧 퇴사를 앞둔 다른 팀 동료를 위한 롤링페이퍼였다.

퇴사하는 동료는 우리 팀(9명)이 아니고, 업무상 함께 일하는 팀도 아니었지만 우리 팀의 누군가 점심시간에 편지지를 사와서 롤링페이퍼가 시작되었고, 모두가 따뜻한 말들을 남겼다.

나는 퇴사하는 동료와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마주친 적도 별로 없어서, 그의 퇴사 소식은 진작에 들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남의 일로만 치부했다.

그런데 나와 마찬가지로 그와 업무상 겹치는 일이 없었을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편지지를 사오고, 따뜻한 말들과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 걸 보니 내가 너무 매정하게, 각박하게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돌이켜보니 지난 2017년부터 한국에서 재직했던 5개의 회사에서 누군가 퇴사한다고 롤링페이퍼를 써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같은 팀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한 팀원이 퇴사해도 선뜻 롤링페이퍼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첫 경험 중인 미국 회사에서는 누군가 퇴사할 때마다 롤링페이퍼를 작성하고, 우리 팀 팀원이 퇴사할 때에는 팀원 모두가 먼 곳까지 함께 차 타고 가서 오랫동안 점심을 함께 먹고, 따로 미팅룸을 잡아서 마지막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악어, 뱀, 토끼, 엘크 등 특수 고기로 만든 소시지 샘플러
팀원의 퇴사 전 마지막 담소를 위한 페이크 미팅

내가 재직했던 5곳의 한국 회사들보다 미국 회사에서 퇴사하는 사람을 훨씬 더 잘 챙겨주는 모습에, 그동안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이 우리 세대에는 많이 퇴색된 것 같고, 나부터도 너무 각박하게 정 없이 살아온 것 같아 반성했다.


🤷‍♀️ 개인 용무가 뭐 이리 떳떳해?

현재 회사는 매주 금요일에 모두가 재택근무를 하고, 그 외에는 개인 사정이 있을 경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에 늦게 오거나, 조퇴하거나, 업무 시간을 변경할 때도 전체 채널에 공유만 하면 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매일 아침 전체 채널에 올라오는 재택/조퇴/업무시간 변경 사유들이 내 입장에서는 황당했다. 회사에 충성하는 스타일이 아닌 나에게도 와 이 사람들 회사를 다니는거야? 아님 회사를 다녀주는거야?ㅋㅋ 개인 용무인데 뭐 이리 당당하고 떳떳해?ㅋㅋ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주 보이는 예시들:

  1.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자서 오늘 회사 못 갈 것 같아. 오전에 자고 오후에 재택근무 할게.
  2. 아이가 울어서 2시간 정도 늦게 출근할게.
  3. 여자 친구가 차 수리를 맡겨서 내가 데려다주느라 1시간 30분 정도 늦게 도착할 예정이야.
  4. 여행에서 어젯밤에 돌아와서 오전에는 좀 쉬고, 저녁에 더 일할게.
  5. 택배 받을 게 있어서 재택할게.
  6. 강아지가 설사해서 오전에 동물병원에 다녀올게.
평일 오전에 장모님 모시러 공항 갈 때 공유한 내용 😅

이런 메시지들이 28명이 포함된 부서 전체 채팅방에 매일 아침 7~10개의 공유가 올라오고, 오후 2~3시에 아이 학교로 픽업가는 부모들은 법으로 보호되어 있는건지 채팅방에 공유조차 안하고 픽업을 다녀온다. (미팅 시간과 겹치면 미팅 참여자들에게만 공유)

때문에 부서 전체 인원의 1/3 정도는 매일 정상적인 시간에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인데, 미국도 회사마다 정책이 다르겠지만, 회사 업무보다 개인 용무를 우선시하는 문화는 군대 문화가 있는 한국 회사(=현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운다고 회사에 늦게 가는 일이 없고, 병원 진료 예약도 점심시간이나 토요일에 잡고, 일요일 밤에 여행에서 돌아왔다고 월요일 오전에 잠을 자겠다는 선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본인 용무를 회사 업무보다 우선시하는 게 전혀 눈치 보일 일이 아니라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 본인이 아프거나,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돌보는 일 등은 매니저들을 포함해서 서로서로 적극적으로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돌봐줘. 급한 일이 있으면 알려줘, 내가 도와줄게 라며 서로 돕는 분위기다.

확실히 남쪽 캘리포니아의 여유로운 문화의 영향도 있겠고, 1950년대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회사의 안정적인 생존력(?) 영향도 있을 것이다.

미국 회사에 다니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의 개인주의가 조금 걱정되었지만,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건강, 가족, 반려동물 등)과 관련된 것들은 한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관심 가져주고 이해해주고 도와주려는 문화가 있어서 아이 둘 + 강아지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는 한국 회사들보다 훨씬 몸도 마음도 편하다.


미국 회사 첫경험기 5 에서 다룰 주제는,

  • 겸손 떨지 말자
  • 마이크로 매니징의 기준이 다르네

이 글은 내가 경험 중인 미국 회사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미국 회사가 이렇다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