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 첫경험기 2

2024년 2월, 미국의 개발자 大 해고 시대에 어렵사리 생애 첫 미국 회사로 이직했고,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처음 경험하는 미국 회사에서의 이모저모를 가볍게 기록해본다.

미국 회사 첫경험기 2
미국 회사 취업 전까지의 이야기는 매년 작성한 연말 회고 글들에서 확인 가능

지난 이야기 👇

미국 회사 첫경험기 1
2024년 2월, 미국의 개발자 大 해고 시대에 어렵사리 생애 첫 미국 회사로 이직했고,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처음 경험하는 미국 회사에서의 이모저모를 기록해둔다.

🇺🇸 영어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네?

군복무를 마친 2012년, 불효놈은 홀어머니의 등골을 뽑아 미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전 여친(현 와이프)을 만나러 미국에 왔었다. 그리고 2013년까지 1년 정도 미국에 머물며 열심히 영어를 공부 놀았다. 🏄‍♂️

그래서 생존 영어 정도는 가능했고, 난 개발자니까 영어 좀 못해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2022년 미국에 이민을 왔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도 1년 이상 한국인 동료들만 있던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법인 소속으로 지냈기 때문에 생존 영어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미국회사 취업 과정에서도 영어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10분짜리 리쿠르터 콜도 두려워하고 잘 못 알아들어서 I'm sorry?를 자동응답기 마냥 연발했다. 그런데 리쿠르터 콜을 일주일에 10개씩 하다 보니 점점 받는 질문들과 답변하는 내용들이 뻔해져서,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변을 시작하는 자동응답기, 리쿠르터 콜 ㅈ문가가 되었다.

다음 단계인 라이브 코딩 인터뷰는, 코드를 작성하며 거의 음성으로 손짓, 발짓을 하면 되었다. like this~ like this~로 휘뚜루마뚜루 면접관의 귀를 휘감으면 충분했고,

약 1시간 대화해야하는 Hiring Manager 인터뷰는 미리 질문할 것들을 준비하고, 선빵필승 전략을 사용했다. 시작부터 I have a question 🤚으로 선빵을 날려 면접관의 강냉이를 털었 질문들을 쏟아부었고 면접관이 말을 더 많이 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못 알아들었어도 어허~ 어허~ 하면서 고개 끄덕거리고 리액션을 확실하게 해주면 면접관은 더 많이, 더 자세하게 답변해주었다. 그렇게 내가 말하는 시간을 최소화했고, 내 영어 실력도 최대한 감출 수 있었다.

그래서 영어는 이 정도면 되겠네? 싶었다.

하지만 미국 회사 입사 후, 오프라인에서 영어를 쓰니 온라인 면접에서 쓰던 갑옷과 방패 없이 맨몸으로 전투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말 속도는 면접에서보다 훨씬 빨랐고, 발음은 더 흐리멍덩했고, 내가 모르는 슬랭이나 숙어들(지난 6개월간 iron outI ran out으로 이해해온 나놈ㅅㄲ)을 훨씬 더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온라인 면접에서는 내가 못 알아들었을 때 인터넷 연결 상태를 탓하며 자연스레 다시 들을 수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말해주는데 못 알아들으면 내 귓구멍밖에 탓할 게 없었다. 내가 너무 잦은 빈도로 못 알아들을 때는 미안, 내가 청각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말해줄래? 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 (실제로 문제가 있나? 왜 이렇게 못 알아처ㅁ..)

물론 개발자는 다른 직무에 비해 영어 사용량이 적을 수는 있겠으나 여전히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직업이고, 경력이 쌓일수록 개발 능력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옆 팀에서는 경력이나 실력이 아닌, 영어와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하는 개발자가 팀 리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내 의견을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관심이 없거나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내 생각과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잦았다.

특히, 입사 초반에 동료들과 협업하며 실력을 검증받는 단계에서, 나의 선택(왜 이런 방식으로 개발했고, 왜 우선순위를 이렇게 설정했는지 등)을 모두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동료들 사이에서 내 빌어먹을 영어가 내 생각과 행동의 깊이를 간장 종지마냥 얕고 좁게 만들곤 했다.

임재범 모창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동료들도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 글을 번역해서 보게 된다면, 위안이 되어주는 그대들 감사합니다. 이 거친 세상에서 다 같이 파이팅합시다 👊)

드물지만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동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면, 본의 아니게 너무 딱딱하게 답변하거나, 상대방이 오해하게끔 답변하는 경우가 꽤 많다.

상대 입장에서는 저 동료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거다 라는걸 알면서도, 사람이다 보니 조금 감정이 상하거나 호감이 줄어드는 경우가 생기는데, 나도 마찬가지로 원어민 동료들에게 그렇게 보이겠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그래서 표정이나 말투를 알 수 없는 메신저로 대화할 때는 내 영어 표현에 조금 더 신경 써서 ChatGPT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검열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매일 회사에서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듣기 실력이 느리지만 조금씩 늘어가는 느낌이고, 잡담(스몰톡)도 조금씩 편해진다. 가끔 내 짧은 농담에 동료들이 빵 터지는 순간들도 생겼는데, 그럴때마다 내 영어 실력을 빨리 늘리고 싶은 조급한 마음도 든다.

개발자 영문 Resume 작성 노하우를 resume.guide 에 정리한 것처럼, 개발팀에서 자주 보고, 듣고, 사용하는 실전 영어 표현들을 기록하고 있고, 조만간 english4.dev에 공유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내가 관심 없는 미드나 영화, 미국 뉴스들을 억지로 소비하며 동료들 간의 스몰톡에 최대한 엮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함께 일하기 즐거운 동료가 되는 방향으로 노력할 예정이다.

성문종합영어 피해자들 화이팅!


미국 회사 첫경험기 3 에서 다룰 주제는,

  • 내가 제일 Racist 같네?
  • 의외로 정이 있네?
  • 개인 용무가 뭐 그리 떳떳해?

이 글은 내가 경험 중인 미국 회사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미국 회사가 이렇다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