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 첫경험기 1

2024년 2월, 미국의 개발자 大 해고 시대에 어렵사리 생애 첫 미국 회사로 이직했고,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처음 경험하는 미국 회사에서의 이모저모를 가볍게 기록해본다.

미국 회사 첫경험기 1
미국 회사 취업 전까지의 이야기는 매년 작성한 연말 회고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경 설명

  1. 체육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해운 무역 일을 하다가, 29살이었던 2018년에 개발자가 되었다.
  2. 0살, 2살 아기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2022년 9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3. 이민 준비를 위해 2021년 6월 토스 페이먼츠에서 퇴사했고, 2021년 11월에 미국에서도 일할 수 있는 한국 스타트업인 Relate에 취업했다.
  4. 처음에는 실리콘밸리 지역에 정착하려 했으나,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더 잘 맞는 남쪽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5. 2023년 11월, Relate에서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미국 회사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6. 2024년 2월, 약 3개월간의 도전 끝에 집에서 10분 거리의 Allied Universal 본사에 취업했다.

1. 점심을 다 같이 먹는다고?

미국 회사에 입사한 첫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차를 타고 10분 거리의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미국 회사니까 다들 혼자 먹겠지 라는 생각 1스푼에 내 영어 실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 2스푼이었다.

그렇게 약 2주간 매일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는데, 어느 날 미팅룸에서 1:1로 KT(Knowledge Transfer)를 해주던 팀 동료가 내게 물었다.

동료: "너 매일 점심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나: "어, 나 집이 10분 거리라서 집에서 점심 먹고 쉬다가 와."

동료: "집에서 뭐 먹어? 우리 너랑 같이 밥먹으려고 매일 기다렸는데 너가 12시 되자마자 사라져서 궁금했어."

나: "너희 매일 같이 점심 먹어?"

동료: "응 우린 12시 30분쯤부터 다 같이 회사 밖에 테이블에서 먹어. 너는 집이 가까워서 집에 가는 게 편하겠지만, 한 번 같이 먹자. 우리 새로운 팀원 들어오면 첫 날 점심 식사를 우리가 대접해 주는 전통(?) 같은 게 있거든."

나: "헐! 그렇구나, 몰랐네. 좋아!" (실제로 한국식으로 헐! 이라고 함)

실제로 백엔드 개발팀 팀원 8명은 매일 점심 식사를 다 함께 먹는다. 당연히 회사나 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한 미국 회사의 모습과는 달라서 놀랐다.

특히 Allied Universal은 유연한 문화를 가진 빅테크나 스타트업도 아니고, 1957년 설립된, 오래되고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는 보수적인 미국 회사다. 그런데 이런 회사에 이런 문화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팀원들과 함께하는 첫 번째 점심식사에서, 내가 받은 첫 질문이 너무 좋았다.

"너 롤(League of Legends) 티어 뭐야?"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소식을 들은 팀원들은 나의 롤 실력을 궁금해했다. 상혁(Faker)의 위상을 실감했다. 😆

2. 생활비 감당이.. 되네?

Relate에서는 한국 기준으로 연봉을 받았다. 내 경력에 비해 많이 받는 편이었지만, (감사해요 Relate 팀 🙏) 미국 캘리포니아 기준으로는 생활비 감당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아끼고 살아도 매달 몇천 달러씩 마이너스였고, 결국 한국에서 모아간 돈을 거의 다 써서 통장 잔고가 $1,600까지 내려갔었다. 😱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고, 와이프와 두 아이의 생계를 나 혼자 책임지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미국 회사 취업을 준비하면서 경제적 보상 수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회사들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근무하는 지역에 따라 연봉 범위가 달랐고, 내가 속한 캘리포니아는 물가와 월세, 생활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연봉 범위도 가장 높았다.

캘리포니아의 Software Engineer 연봉 범위 (출처: Glassdoor)

지원할 회사들을 검색해보니 당시 경력 4년의 백엔드 개발자인 내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은 대략 12만불 ~ 22만불 수준이었다. 계산해보니 미국 회사로 이직하면 생활비를 감당하고도 매달 5,000불 정도는 저축할 수 있었다. (연봉 외 보상은 제외)

내가 취업한 미국 회사인 Allied Universal은 B2B 회사라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회사고, 빅테크 혹은 인기 많은 회사가 아님에도 Relate에서 받던 연봉의 3배 넘게 받게 되었다.

유명한 빅테크나 더 좋은 회사에 재직하는 분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을 테지만, 지금 받는 보상 수준도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했다. 매달 마이너스로 살다가 매달 여유 자금이 생기는 삶이 되니, 조급한 마음에 붕 떴던 마음도 가라앉았고 경제적인 평온이 찾아왔다.

더 빨리 미국 회사로 이직하지 않고 와이프를 고생시킨 것이 후회되었다.

3. 시간 개념이 좀 다르네?

우리 회사의 정해진 출근 시간은 9시고 퇴근 시간은 5시다. 그런데 9시에 출근하면 아무도 없다.

대부분 9시 30분쯤 출근하고, 4시 30분에 대부분 퇴근한다. 그리고 정해진 점심시간은 1시간인데, 대부분의 팀원이 점심 먹고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해서, 보통 1.5 ~ 2시간 정도 사용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라면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것들이지만, 사무실에 출근하는 회사인데도 모두가 하루에 약 2시간을 뺑끼치는게 신기했다.

(케바케겠지만) 미국 회사의 시간 개념은 좀 다른 것 같다. 정해진 시간은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본인이 자유롭게 조절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개념의 시간인 것 같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미팅 시간은 정말 철저하게 지키는데, 본인의 업무 진행 상황에 따라 출근/점심/조퇴/외출/퇴근 시간은 알아서 자유롭게 조절한다.

해고가 너무 쉬워서 그런가.. 무튼 피고용인 입장에서는 참 좋은 시간 개념이다. 😅


미국 회사 첫경험기 2 에서 다룰 주제는,

  1. 영어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네?
  2. 내가 제일 Racist 같네?
  3. 의외로 정이 있네?
  4. 개인 용무가 뭐 그리 떳떳해?

이 글은 내가 경험 중인 미국 회사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미국 회사가 이렇다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