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 출신 개발자의 2024년 회고
Resume 393개 제출한 끝에 미국 회사에 취업하고, 개발자 영문 이력서 작성 가이드북인 resume.guide 서비스 출시하고, 인프런 강의도 출시하고, 축구하다가 쇄골이 부러져서 수술하고, 사고 싶은 집을 발견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못 사고, 책 34권 읽은 2024년 회고
이 글은 개인적인 회고록이다.
그래서 독백체
2018년 회고
2019년 회고
2020년 회고
2021년 회고
2022년 회고
2023년 회고에 이어,
2024년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다.
이번 회고도 개발자 커리어, 사이드 프로젝트, 인생으로 나누어 작성해보았다.
1. 개발자 커리어
인생 첫 미국 회사에 취업한 2024년 개발자 커리어 기록
1-1. 미국 개발자 취업 준비 시작
2022년 9월에 미국에 도착한 나는 2023년 11월까지 한국 스타트업(Relate)의 미국 법인 소속으로 일했다. (2021년 11월부터 2년간 재직)
미국 기준 연봉을 줄 수 없다는 통수 통보를 2023년 상반기에 받았고, 이때부터 이직을 마음에 담았다. 물론 2023년에 진행한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들과 회사 업무 때문에 제대로 준비할 수는 없었고, 가끔 Leetcode 문제 1~2개 푸는 정도였다.
그리고 퇴사가 확정된 2023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개발자 이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야 이거, 뭐 이렇게 준비해야되는게 많아?
🫠
Leetcode 문제만 열심히 풀 생각이었는데, 준비해야 할 것들이 대략 10가지는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 미국 개발자 취업/이직 10단계)
- Resume 작성 및 피드백 구걸
- LinkedIn 프로필 작성 및 Referral 구걸
- 채용공고 검색 및 지원
- Recruiter call
- Phone screen (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알고리즘 문제)
- Hiring manager 인터뷰
- Low level/OOP 코딩 과제 또는 Pair programming 인터뷰
- Live coding 인터뷰 (보통 1시간씩 2~3번)
- System design 인터뷰
- Behavioral 인터뷰
- Offer 협상 (연봉 및 그 외 보상들)
- Offer letter 싸인 및 입사
7번과 10번은 진행하지 않는 회사들도 있었고, 그 외에는 대부분 위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이력서를 제출하고 온라인 코딩테스트와 면접 1~2번이면 모든 채용 과정이 끝났지만, 미국에서는 대략 10단계의 프로세스가 필요했고 각 단계마다 전략과 노하우가 필요했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시작한 것은 2023년 11월 중순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보통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쉬는 회사들이 많아 채용이 거의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직할 회사를 정하지 않고 퇴사해서 쉬는 기간을 길게 갖는 선 퇴사 후 이직
은 나의 시그니처 무브가 되었지만, 미국에서의 선 퇴사 후 이직은 심리적 압박이 상당히 심했다.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월세+생활비가 거의 1만 불이었기 때문에.. 🥶
1-2.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내가 미국에 온 직후, 실리콘밸리에서 개발자 大 해고 시대가 시작되었다.
2022년 4분기에 미국에 이민 오자마자 Layoff 빔을 맞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하던 2023년 4분기까지 해고당한 개발자들이 쌓이고 쌓였다. 왜 하필 내가 이직할 타이밍에?
😭
물론 2023년 초까지는 빅테크 리쿠르터가 먼저 연락해오는 경우도 많았고, 이직할 마음도 없었던 상황이라 별걱정 없이 지냈다.
하지만 채용 공고를 적극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2023년 11월에는 좋은 회사들이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
2023년 2월에 I'm sure you're constantly inundated with recruiting messages, so I will keep this short and sweet.
라며 겸손하게 메시지를 보내오던 10조 가치 스타트업 리쿠르터의 DM이 언제 적 일인가 싶을 정도로 불과 몇 개월 만에 개발자 채용 시장이 확 뒤집어진 것이다.
2023년 11월에는 듣보잡 회사의 시니어 개발자 채용공고가 올라와도 2시간 안에 1천 명 이상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름을 들어본 회사의 채용공고에는 보통 1만 명 이상 지원(리쿠르터 피셜)할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특히 신입 개발자 채용공고는 멸종 위기 수준이었는데, 이 시기에 취업한 신입 개발자분들은 정말 Respect..🫡
게다가 나보다 더 경쟁력있는 경력을 쌓아온 실리콘밸리 빅테크 출신 개발자들이 대거 지원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모르는 한국 회사들 경력만 가진 평범한 내가 Resume 단계를 뚫는 것이 가능한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1-3. 미국은 넓고, 회사는 많다
본격적으로 미국 회사들에 지원하다 보니, 미국은 넓고 회사는 개많다
는 사실을 깨달았다.
듣도 보도 못한 회사들의 채용공고가 수없이 올라왔는데, 회사 이름을 구글링해 보면 의외로 엄청 큰 회사거나, 역사가 오래된 회사거나, 돈을 많이 버는 회사인 경우가 많아서 놀랐다. (현재 재직 중인 곳도 회사 이름은 처음 들어봤지만 연 매출 20조가 넘는 비상장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경력 개발자가 지원할 만한 회사들이 수십 개에 불과했다면, 미국에서는 기본 수백 개가 넘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1천 개 이상 지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회사가 존재한다. 그만큼 지원자도 많지만..🫠
그렇게 첫 최종 합격 목걸이를 받을 때까지 2개월간 총 393개의 회사에 지원했다.
1-4.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채용 시장이 꽝꽝 얼었다지만, 범용적인 기술(Java/Spring)을 사용해 온 경력 5년의 개발자인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채용공고가 매일 10개 이상 올라왔다. 때문에 만약 새로운 채용공고에 전부 지원하면 코딩 테스트나 면접을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효율/효과적으로 회사들에 지원하고, 코딩 테스트와 각종 면접 준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육아도 해야하니까..🫠
지원한 회사들과 지원할 회사들, 그리고 각각의 채용 프로세스를 한 곳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지원한 393개의 모든 JD 및 포지션 정보, 리쿠르터 콜 질문/답변, 코딩테스트 문제 및 제출한 코드, 면접 질문/답변, 면접 후기 등을 하나의 Google Sheets 파일에 모두 기록했다.
무의미한 지원을 피하고자 회사 등급을 S, A, B, C로 나누었고, 등급을 정한 이유를 함께 기록해 두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가 선호하는 회사들의 정량적인 특징들을 구체화하고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등급이 낮은 회사들에 먼저 지원해서 면접 경험을 미리 쌓고, 높은 등급 회사들의 면접 통과 확률을 높이고자 했다. (이 방식은 이기웅 님에게 배운 방법이다. 감사합니다!)
지원 방식은 Inbound
, Outbound
, Platform
, Referral
4가지로 나누었고 (채용 프로세스 이해하기 참고), 이를 기록해서 최대한 4가지 방식을 골고루 활용했으며, 지원 결과를 추적해서 투자한 시간 대비 결과가 좋은 방식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4. 신림동 고시 낭인 방구석 면접 낭인
2개월간 진행한 모든 채용 프로세스를 정리하자면,
- 지원한 회사 (393개)
- Recruiter Call (59개)
- Online Assessment (17개)
- Phone Screen / Hiring Manager / VP of Engineering (19개)
- Final Round (7개)
- 최종 합격 (2개)
이 과정에서 OA를 제외해도 2개월간 총 47개의 면접을 봤다. (Final Round 7개는 모두 4개씩 면접이 진행되어 총 28개 + 19개)
특히 Final Round가 몰린 2024년 1월에는 총 32개의 면접을 봤고, 면접이 겹친 날은 하루에 1시간짜리 면접을 7개 진행한 날도 있었다. 🤮 이 기간에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하는 꿈을 많이 꾸었다. 매일 이렇게 지내면 영어가 금방 늘겠더라..
1-5. 393개가 2개가 된 과정
이 시기에는 아침에 눈 뜨면 이메일부터 확인했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약 5개의 불합격 통보 이메일을 읽고 하루를 시작했으니 멘탈을 부여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앞선 경험자들이 조언해 준 대로 1개만 되면 된다
는 사실 하나만 움켜쥐고 버텼다.
면접을 정말 잘 봐서 이건 무조건 합격이다
라고 생각한 경우에도 리쿠르터의 연락이 두절되거나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면, 내 영어가 문제였나?
면접관이 아시아인을 싫어하나?
그 중국인 면접관이 한국 사람들을 싫어하나?
등등 별별 잡생각에 휩싸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왜 면접을 잘 보고도 떨어졌는지 현재 회사에 취업한 이후에 알 수 있었다. 현재 회사에서 지원자들의 Resume를 가끔 보는데, B2B 회사라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고, Irvine에 위치해서 크게 매력적인 회사가 아님에도 빅테크 출신 개발자들이 엄청 많이 지원한다.
그동안 내가 면접을 잘 보고도 떨어진 회사들은 빅테크 혹은 유명한 회사들이었다. 나만큼 혹은 나보다 면접을 더 잘 보고, 그간 쌓아온 경력도 더 훌륭한 지원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이직에 도전했겠지만, 매달 1만 불씩 깎여나가는 이곳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될 때까지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개월간 지원한 393개의 회사가 2개가 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지원한 회사 (393개)
- 하루에 약 10개 내외로 지원했다.
- 당시 최근 경력의 기술 스택은 Ruby on Rails였고, 가장 경력이 오래된 것은 Java/Spring이었기 때문에, 지원한 회사들 중 이 두가지 기술 스택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 Java/Kotlin/Spring (148개)
- Ruby on Rails (88개)
- 알 수 없음 (54개)
- Go (24개)
- TypeScript/React (19개)
- Python (11개), C#/.NET (9개), C/C++ (6개), Node.js (5개), 그 외 (29개)
- 빅테크 회사들의 (Senior) Software Engineer 포지션 채용공고는 기술 스택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54개)
- Go 경험과 경력이 전혀 없으나, (내 기준) S등급 포지션들이 Go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24개나 지원했다. 전부 Resume 단계에서 떨어졌다. 😅
-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만들며 한창 Next.js를 많이 사용하던 때라 Typescript와 React를 사용하는 풀스택 개발자 포지션에도 다수 지원했으나, 대부분 Resume 혹은 Recruiter Call 단계에서 떨어졌다.
2. Recruiter Call (59개)
- 첫 리쿠르터 콜이 생각난다. 전화로 영어를 들으면 더 알아듣기 힘들었던 나는 리쿠르터로부터 5개의 질문을 받는 동안 10번 이상
I'm sorry?
를 남발했다. - 보통 15분~30분 정도 진행되는 리쿠르터 콜을 10번쯤 하니 못 알아듣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영어 듣기 실력이 늘었다기보다, 긴장을 덜 하게 되었고 비슷한 질문들을 이미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 리쿠르터 콜을 할 때마다 받은 질문과 답변을 기록해두었고, 이 기록을 활용하여 매번 개선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 30번쯤 하니, 거의 자동응답기 수준으로 유창하게 답변할 수 있게 되었다.
- 50번쯤 했을때는 리쿠르터에게 내가 먼저
스몰 토크
를 시전할 수 있게 되었고, 약간의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좋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 이쯤부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확률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3. Online Assessment (17개)
- 온라인 알고리즘 문제 테스트 (12개)
- HakerRank (5개), CoderByte (2개), Codingame (2개), Codility (2개), Byteboard (1개)
- 미니 프로젝트 과제 (5개)
- 팀에서 사용하는 주요 기술 스택을 활용하여 해당 팀이 만드는 서비스의 간단한 버전을 만드는 과제가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대부분 개발하는 재미가 있었고 결과도 좋았다.
- 기능 구현은 누구나 다 하기 때문에 OOP와 테스트 코드, 시스템 디자인이 주된 평가 포인트였다.
4. Phone Screen / HM / VP of Eng (19개)
- Phone Screen의 경우 보통 시니어 혹은 더 높은 레벨의 개발자 1~2명과 함께 라이브 코딩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Pair Programming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 Hiring Manager 인터뷰는 한국의 전형적인 구두 기술 면접과 C레벨 면접을 합친 느낌이었다.
- 면접관이 개발자 출신 Hiring Manager이거나 VP of Engineering인 경우, 내 Resume에 작성된 특정 프로젝트 경험과 기술적인 질문의 깊이가 깊어졌고, 그 외에는 내가 경험한 프로젝트들과 관련된 질문들을 통해 팀에서 찾는 개발자인지 확인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 Hiring Manager가 채용 결과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면접이라는 사실을 미국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 알게 되었다.
- 이 라운드까지도 면접관들에게 내 Resume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했다.
이렇게 얼굴에 철판 깔고 얻은 꿀팁들을
resume.guide
에 전부 담았다 🙃
5. Final Round (7개)
- Final Round 7개는 모두 각각 1시간짜리 면접 4개가 진행되었다.
- 보통 Live coding 인터뷰 2개와 System design 인터뷰 1개는 모두 진행되었고, 회사에 따라 Behavioral 인터뷰를 보기도 하고, 팀원들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인터뷰가 진행되기도 하고, Hiring Manager와 다시 인터뷰하는 경우도 있었다.
- 미니 프로젝트 주제를 주고 4번의 면접에서 각각 다른 면접관들에게 질문하며 완성해나가는 방식의 Final round도 있었다. (초기 스타트업)
6. 최종 합격 (2개)
- 2024년 1월 중순에 회사 A와 B로부터 offer letter를 받았다. 😭
- A회사는 유명한 회사였지만, 출퇴근 왕복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 B회사는 미국에 오랜 산 지인들도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지만,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있어 B회사를 선택했다.
- 2024년 6월쯤, A회사에서 대규모 해고를 진행했다.
ㄷㄷ
- 2개월간 방구석 면접 낭인으로 지내며 면접 통과율이 꽤 높아진 상태라
더 지원하면서 빅테크를 노려볼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다음 달 생활비도 부족한 통장 잔고를 보고Eject
버튼을 눌렀다.
1-6. 인생 첫 미국 회사
2024년 2월부터 인생 첫 미국 회사로 출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왜 진작 미국 회사에 취업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2주마다 받는 급여가 이전의 3.5배나 되었다. 현재 회사는 빅테크 회사들처럼 보상으로 때려눕히는 회사도 아니고, 미국 캘리포니아 기준의 평범한 경력 개발자 연봉을 책정받았을 뿐인데도 차이가 심했다.
매달 몇천 불씩 마이너스를 감수하며 꾸역꾸역 버틴 시간을 지나, 매달 몇천 불씩 저축할 수 있는 생활이 되니 내 마음에 강하게 꽂힌 것이 있다.
제품 시작부터 런칭까지 개발하기, Product Engineer로서 주도적으로 일하기, 똑똑한 동료들과 효율적으로 일하기 등, 성장에 도움 되는 경험들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사실이다.
첫 2주급이 통장에 찍히고, 세 가지 생각이 스쳤다.
다행이다!
다음 달부터 생활비 걱정은 없겠다!열받네.
이렇게 받을 수 있는데, 구두 약속 하나 믿고 이직할 생각을 안 한 거야?잘하자!
이 정도 받으면 값어치 해야지!
미국 회사에서의 경험담은 미국 회사 첫경험기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 자전거 출퇴근
취업한 회사가 Irvine에 있는 것만 보고 합류를 결정했는데, 검색해 보니 집에서 차로 8분 거리에 있었다. 🙃
자전거로도 고작 15분 거리였기 때문에,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로 하고 State Bicycle의 single speed 자전거를 12년 만에 다시 구매했다.
State Bicycle과 나는 약간의 역사가 있었다.
1. 2012년에 군복무를 마치고, 군복무를 기다려준 지금의 와이프가 유학 중이던 애리조나에 방문했고,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를 샀다. (이 허름한 동네 가게가 State Bicycle 브랜드의 시작점이었다)
2. 동네에서 열린 alleycat race에 참여해서 우연히 State Bicycle 창업자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매우 친절하고 나이스해서 State Bicycle의 팬이 되었다.
3. 2013년 1월부터 1년간 어학연수를 했던 샌프란시스코로 가져가서 매일 허벅지 터지는 업힐과 지옥행 다운힐을 겁없이 타다가, 한국에 돌아가던 2013년 12월에 중고로 판매했다.
4. 12년만에 다시 구매!
그렇게 State Bicycle은 다시 내 발이 되어주었다.
아빠 넘어지지 말라는 수지호의 배웅 🥰 절대 넘어질 수 없는 외노자 가장의 출근길🚲
이 지역의 안전한 자전거 도로와 운전 문화 덕분에 매일 상쾌하게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다.
1-8. 개발자 되길 잘했다
생활비의 압박이 없어진 뒤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이렇게나 좋은 환경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매일 행복하게 산다는 것에 감사했다.
특히, 거주할 국가와 지역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과 내가 개발자가 되지 않았다면, 영주권이 있어도 미국에 이민 올 생각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개발자 되길 잘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기술과 경험 그리고 AI로 만들고 싶은 것들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전까지는 백수 지향 개발자
로서 회사 일과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계속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
2. 사이드 프로젝트
2024년에 했던 다양한 딴 짓들의 기록
2-1. resume.guide
개발자를 위한 영문 Resume 작성 가이드(https://resume.guide)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이력서를 제출하고 온라인 코딩테스트와 면접 1~2번이면 모든 채용 과정이 끝났지만, 미국에서는 대략 10단계의 프로세스가 필요했고, 각 단계마다 전략과 노하우가 필요했다.
그리고 각 단계를 직접 준비하고 실제로 겪다 보니, 이런 것들을 누군가 깔끔하게 딱 정리해서 알려주면,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시간과 비용을 훨씬 아낄 수 있겠다
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런 서비스가 있었다면, 최대한 빨리 취업/이직을 해야하는 나부터 당장 구매해서 시간을 아꼈을 것이다. 단 2주라도 더 빨리 취업할 수 있다면 약 8,000 달러(캘리포니아 경력 개발자 기준) 정도는 더 벌 수 있으니, 그런 서비스가 있다면 몇백 달러를 지불해서라도 시간을 아끼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각 단계에 특화된 서비스들은 존재했지만, 이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한국 사교육 방식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떠먹여 주는 서비스나 가이드북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미국 회사로 취업/이직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이드북 제작도 염두에 두고 준비 과정에서 알게 된 좋은 정보, 자료, 전략, 노하우, 피드백을 모두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취업에 성공하면 미국 개발자 취업의 A부터 Z까지 다루는 가이드북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2024년 1월 취업에 성공한 후, GetDevJob.com라는 이름으로 미국 개발자 취업/이직 전체 가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장 첫 파트인 Resume 파트부터 그동안 모은 고급 정보와 자료와 노하우가 너무 많아서, 이 파트 하나만 작성하는 데에도 몇 개월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실제로 3개월 이상 걸렸다 🫠
그래서 우선 Resume 파트를 만들어서 출시하고 다음 단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계획을 수정했고, 약 3개월간 개발하고 내용을 다듬어서 개발자를 위한 영문 Resume 작성 가이드를 만들었다. → resume.guide
취업 준비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미국 실리콘밸리 개발자들, Recruiters, 면접관들, Resume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아 Resume를 정말 수십 번 뜯어고쳤다. 처음에는 Resume를 수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Resume를 개선할수록 Recruiter Call 단계로 넘어가는 확률이 올라갔고, 최종 합격에 점점 가까워졌다.
작년에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만들 때 익혀두었던 Next.js와 Supabase를 사용해서 만들었고, Vercel을 통해 배포하고 있다. Next.js + Supabase + Vercel 조합이 무료 티어로 작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1인 개발자들에게는 현재 최고의 조합이 아닐까?
2-2. 인프런 강의
resume.guide 한글 버전을 기반으로 인프런 영상 강의를 만들었다.
resume.guide는 미국의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빠른 작업을 위해 한국어 버전을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영어 버전을 작업하기 전에 인프런 강의를 먼저 만들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 영상 강의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한 번 더 다듬고 영문 버전을 만들기 위해
- 한국에서의 개발자 영문 Resume 관련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결과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은 것을 고려해도 수강생이 약 3개월간 65명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 만약 인프런 강의 판매가 resume.guide의 최종 목표였다면 大실패
에 가까운 결과였다.
하지만 인프런 강의로 만드는 과정에서 resume.guide의 내용을 더 깔끔하게 다듬었고, 한국 시장의 수요를 어느 정도 파악했고, 매달 작고 귀여운 수익까지 발생하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앞으로 개발자 해외 취업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해외 취업과 이민에 관심을 갖는 개발자분들의 개별적인 연락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토스에 재직할 때 알게 된 분들과 한국의 대기업 혹은 네카라쿠배당토야에 재직중인 분들이 굉장히 많이 연락하셔서 놀랐다.
한국에서 좋은 회사에 재직하는 분들은 미국의 더 좋은 회사들에 도전하려는 경우가 많았고, 결혼했거나 아이가 있는 분들은 더 나은 라이프 스타일과 육아 환경을 찾아서 이민을 고려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언어, 비자 등)에 좌절하는 분들도 꽤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국 시장을 타깃하기보다, 규모가 훨씬 큰 미국 시장에 집중할 예정이다.
2-3. 한 가지에 집중하기
만들고 싶은 서비스들이 계속 늘어갔고, 비례해서 내가 사둔 도메인들도 어느새 28개나 되었다.
그래서 항상 부족한 개인 시간과 만들고 싶은 많은 것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resume.guide를 만들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resume.guide 영문 버전까지 만들고 다음 단계 서비스를 제작하려했다. 하지만 resume.guide가 충분한 트래픽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들(리뷰 예시, SEO, 블로깅 등)을 마련하고, 트래픽과 매출을 충분히 성장시킨 이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아직 제대로 수익을 내는 서비스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고 싶은 제품들만 계속 찍어내면 피드백 루프를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품(즉,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제품)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만 만드는 츠쿠요미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디 해킹의 정석은 작은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고, 소비자 반응이 좋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가 만든 서비스들로 후반부(유료화, 마케팅, 고객관리 등)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한 번 돌아보기 위해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 서비스는 훨씬 더 빠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만드는 목적은 개발 실력 늘리기도 아니고, 취업이나 이직을 위한 포트폴리오 재료 목적도 아니다.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줄여가며 프로젝트들을 만드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2-4. 만들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사용 중인 Notion 페이지가 많지만, 가장 자주 업데이트하는 페이지는 To-dos
와 resume.guide
, 그리고 Business
페이지다.
Business 페이지는 사이드 프로젝트의 대시보드 역할을 한다. 만들고 싶은 서비스(📌 To Do), 만드는 중인 서비스(🛠️ Building), 잠시 멈춘 서비스(⚓ Parking Lot), 그리고 운영 중인 서비스(🚀 Live)로 나누어 관리한다.
그리고 각각의 서비스 마다 하위 페이지를 만들어 자세한 기획과 task는 그곳에서 관리한다. resume.guide 페이지도 Business 페이지의 하위 페이지인데 규모는 훨씬 커졌다.
현재 만들고 싶은 서비스들이 약 36개 정도 쌓여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 To Do
에 추가해두고 우선순위를 조정한다. 아이디어를 무조건 쌓아두지는 않고, 가끔 쭉 살펴보면서 우선순위를 변경하고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 Trash
로 넘겨버린다.
이렇게 만들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회사 일과 육아를 하고 남은 시간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느리다. 🫠
그래도 사이드 프로젝트로 첫 성공 경험을 쌓을 때까지는 혼자 할 예정이다. 직접 만든 서비스가 성공하는 과정을 혼자서 경험해 봐야 어떤 부분에서 남에게 위임이 필요하고, 어떤 부분은 직접 하는게 나은지 더 쉽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시작하고 싶은 서비스들도 📌 To Do
목록 상위권에 있다. 특히 내가 약한 프론트엔드 개발을 잘하는 분이면 함께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시나 관심 있는 분들은 연락주세요🙏 rhep0820@gmail.com
3. 인생
2024년 내 삶의 이모저모 기록
3-1. 2024 가계부
2023년부터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모든 지출과 수입을 기록했다.
2023년 12월에 통장잔고 1,600불을 찍고, 처남에게 5천 불을 급하게 빌렸다. 그래서 딱 1월까지 버틸 수 있었는데, 다행히 1월에 취업해서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다. 🥶
작년에 처음으로 가계부를 공개한 이후, 미국 생활(이민, 유학, 한달살이, 주재원 등등)을 계획하는 분들로부터 많은 참고가 되었다. 감사하다
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서 올해도 공유해본다.
3-2. 행복 자산 키우기
행복 자산 키우기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 이후로 육아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도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나를 가장 필요로 할 시절(4살, 2살)에 아이들과 최대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고, 내 사이드 프로젝트들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 퇴근 후(5시)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는 휴대폰도 1층에 두고, 2층에서 아이들과 마음 편히 놀다가 9시쯤 아이들이 잠들면 할 일을 시작하거나, 같이 잠들었다가 새벽 3~4시쯤 일어나서 내 할 일을 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진작 이렇게 아이들과 편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 스스로 조급해하며 퇴근 후에도 마음 편히 아이들과 놀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개인 프로젝트는 나중에 만들어도 되고 돈도 나중에 벌어도 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나중이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결혼기념일(11월 25일)에 집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나의 가장 큰 행복 자산 ❤️
3-3. 축구와 쇄골
작년 11월부터 축구팀에 들어가서 매주 화요일 저녁에 2시간씩 축구를 해왔다.
살면서 이렇게 축구를 꾸준히 해온 적이 없었는데 (맨날 다쳐서), 지난 1년간 부상 없이 매주 축구를 하게 되니 내 축구 실력도 처음보다 좀 늘었다.
그렇게 매주 행복 축구를 해왔는데 11월 어느 날 가슴팍에 고프로 카메라를 처음으로 착용하고 경기에 뛴 나는,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생전 해보지도 않은 오버헤드킥을 시전했다.
그 결과, 어깨로 착지해서 쇄골이 골절되었고, 12월 초에 한국에 가서 쇄골에 철심을 박아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멍청..🫠
수술 후에는 암슬링을 하고 있어서, 수지와 지호보다 손이 많이 가는 와이프의 큰아들
로서 큰 짐이 되고 있다. 미안하고 사랑해 여보 😅
3-4. 사고 싶은 집 발견
현재 거주 중인 타운 하우스는 2025년 1월까지 계약이라, 11월쯤부터 이사 갈 집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 집의 퀄리티에 비해 렌트비가 너무 올라서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
Zillow.com에서 열심히 이사 갈 집을 찾던 도중, 지금 시점의 우리 가족 사이즈에 딱 맞는 3 bed 싱글 하우스가 판매 중인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렌트할 타운하우스들만 보다가, 새로운 동네 구경도 할 겸 판매 중인 이 싱글 하우스의 투어를 신청하고 구경했다.
그리고 이 가격대의 동네에서는 흔치 않은 뻥 뚫린 뷰, 동네 분위기,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 가까운 마켓 플레이스 등, 집이 약간 낡은 점만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우리에게 딱 맞는 집처럼 보였다.
실제로 가보니, 특히 2층 안방에 연결된 테라스에서 보이는 뻥 뷰가 최고였다. 😭 이 집을 사고, 아침에 테라스에서 따뜻한 햇살 받으며 커피 한잔에 책을 읽거나, 해질녁에 와이프랑 앉아서 노을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상상만해도 행복했다. 😭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이 집 사야겠다
라는 생각에 휩싸였고, 집 구경을 시켜준 리얼터에게 집 구매 의사를 밝히고 모기지 브로커들을 통해서 모기지를 알아보았다. 돈도 없으면서ㅋㅋ
미국은 보통 30년 모기지를 기반으로 집 가격의 5%~20% 정도를 선금으로 내고(중국 부자들은 올캐시로..) 집을 구매한다. 그리고 전년도 세금 신고를 기준으로 소득 수준 등에 따라 모기지를 받기 위해 필요한 선금(다운 페이)의 비중이 달라진다.
그런데 작년에 한국 기준으로 월급을 받아 작년 소득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최소한 20%는 다운 페이를 해야 일반적인 모기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현금은 이 집 가격의 10% 정도밖에 안 되어서 일반적인 모기지를 받기는 어려웠고, 조금 더 모기지 이율이 높은 방식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방식을 사용하면 매달 약 12,000불을 모기지를 갚는 데에만 써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현재 나의 소득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
그래서 20% 다운페이를 하고 모기지 이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하려니 약 2억 원 정도가 부족했다. 그래서 양가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대뜸 2억 있어요?ㅋㅋ
라고 물어보며 온 가족을 들쑤셨다. (지금까지 양가 부모님께 받은 돈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농담하듯이 여쭤볼 수 있었다ㅎ)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양가 모두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이 집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2024년 12월 현재 이 집은 이미 팔렸다. 😭
얼바인과 주변 지역의 집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이 시점에 집을 사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에, 작년에 한국 회사에서 꾸역꾸역 버티지 말고 미국 회사로 이직했다면 이 집을 살 수 있었겠네..
라며 잠시 껄무새가 되어 한 3일 정도 ~할껄 ~할껄
거리다가 마음을 겨우 정리했다.
집 살 돈은 부족했지만 욕심을 부려 집을 정말 살 것처럼 프로세스를 진행해보니, 그동안 아예 모르고 지냈던 미국에서 집 사는 방법/과정을 이번에 상세하게 알게 되었고, 집을 사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모아야 하는지 파악하게 된 것이 나름의 소득이었다. 집 사려면 더 열심히 살자!
3-5. 34살에 34권 읽기
2020년, 30살부터 시작한 내 나이만큼 책 읽기 프로젝트
올해는 문학의 비중을 높였고, 좋은 문학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 해 읽었던 문학 작품들 대부분 좋았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김연수 작가의 책을 찾을 예정이다. 담담한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김연수 작가의 책들은 몰아 읽고 끝내고 싶지 않다. 매년 읽고 싶은 글이다.
개발 관련 책들은 새로운 내용이나 인상 깊었던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고, <글루코스 혁명>을 읽고 식사 순서를 바꾼 것이 큰 소득이었다. 가족들에게 설파 중인데, 혈당 스파이크에 대한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 다들 여전히 밥부터 드신다. 🫠
<4~7세 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를 읽고 4살 수지에게 적용할 육아 지식들을 많이 얻었으며, <퓨처 셀프>에서 읽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미래의 당신이 갚아야 할 비용 아니면 미래의 당신에 대한 투자다.
라는 문장이 올해 밑줄 친 문장 중 가장 좋았고, 축구하다 쇄골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은 상태에서 <축구, 올바른 킥 입문>을 와이프 몰래 읽었다. 😆
블로그에 밑줄 친 문장들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서 매년 읽은 책들에서 밑줄 친 내용들을 정리해두었다.
맺으며
2022년 9월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2024년이 되어서야 아, 이제야 미국에 정착한 것 같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회고의 마지막 부분에 아래처럼 썼었다.
언젠가 이 회고를 다시 읽었을 때, 이때 참 힘들었는데 이젠 추억이네!
라는 말을 와이프와 웃으며 나눌 수 있도록, 2024년에는 더 열심히 살아갈 예정이다.
그리고 올해 와이프와 대화할 때 우리 작년에 진짜 힘들었는데, 벌써 추억이네
라는 말을 우리도 모르게 하곤 했다. 그래도 조금은 열심히 살았나보다. 🙃
우리는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우리 힘으로 17평 전세 신혼집을 구하고, 우리 힘으로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우리 힘으로 미국에 이민을 와서, 우리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언제나 우리 힘으로, 언제나 바닥부터 시작해 온 덕분에, 이제는 언제 어디서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미국으로 이민 온 지 벌써 3년 차가 되었다. 여전히 배고프고, 여전히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았지만, 이민 1세대가 흔히 겪는다는 3년 고생
을 와이프와 아이들 덕분에 잘 견뎌낸 것 같아 뿌듯하다. 물론 아직 터널 속에 있지만, 힘들거나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날 믿고 사랑 주는 와이프와 언제나 해맑은 수지/지호가 나의 에너지를 꽉꽉 채워주기 때문에!
내년 1월에는 이사가 예정되어 있다. 2025년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본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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