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 출신 개발자의 2020년 회고
체육을 전공하고 29살에 개발 공부를 시작한 개발자의 2020년 연말 회고. 롤모델 개발자분들과 만나고, 토스 페이먼츠 서버 개발자로 이직하고, 개발자 취업 강의를 만들고, 첫 딸을 낳고, 공황장애를 겪는 등 비전공자 개발자가 겪은 2020년 성장 이야기.
이 글은 개인적인 회고록이다.
그래서 독백체
체대 출신 개발자의 2018년 회고와
체대 출신 개발자의 2019년 회고에 이어,
2020년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0. 회고 제목..?
회고 제목을 보고 저 사람은 도대체 언제까지 체대 출신을 강조하면서 대단한 척 할거야?
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계실 거라 믿는다. 백번 천번 이해한다. 나도 이 제목을 쓸 때마다 이제는 손발이 오그라든다. 으..
하지만 이 제목은 내가 쓴 연말 회고를 식별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개발자로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 쓸 예정이다.
물론 회사에서나 어디에서든, 내가 체육을 전공했다는 걸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개발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다를 수 있지만, 개발자가 된 이후에는 다 똑같은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전공자
라는 단어, xx 출신
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내가 사용하는 비전공자
, 체대 출신
이라는 단어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1. 만남 with 롤모델
2019년 회고에 이종립(johngrib) 님과 이동욱(jojoldu) 님을 개발자로서 롤모델로 정했다고 썼는데, 종립님이 회고에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소중한 만남이 성사되었다.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사용하시는 분이라 만나 뵙고 싶어도 용기가 안 났는데, 먼저 만남을 제안해 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2019년 12월 28일에 이종립 님과 강남역 어느 식당에서 만남을 가졌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려고 일찍 갔는데, 종립님은 이미 도착하셔서 책을 읽고 계셨다. 역시..ㄷㄷ
종립님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메뉴를 주문하려는데, 종립님이 한 분 더 오시면 주문하자고 하셨다. 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종립님이 깜짝 선물로 이동욱 님께도 연락하셨다고 한다. 우왓!!!
내 롤모델 두 분을 한자리에서 조우하게 된 것이다! 연말 회고의 순기능
개발이라는 바다에서, 나보다 훨씬 멀리 헤엄치고, 훨씬 깊게 헤엄치는 이종립 님과 이동욱 님을 만나서, 약 3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에게는 두 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메모하고 싶은 대화 내용이 너무 많아서, 나의 저성능 기억력을 총동원하여 중요한 내용들을 계속 되새김질했다. 그리고 두 분과 헤어진 후 곧바로 메모 앱에 대화 내용을 거의 모두 복기해서 기록해 두었다.
사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대화 내용을 공유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고, 다만 개발자 성장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답변해 주신 부분 중 일부를 공유하자면, 두 분 모두 잘하는 개발자와 함께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성장 방법
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으셨고, 그러한 환경에 최대한 일찍 처해지는게 좋다
고 하셨다. 좋은 팀원의 중요성을 두 분 모두 무척 강조하셨다.
두 분께 나의 환경을 설명해 드리고 이직 시기에 대한 조언을 구했는데, (돌이켜보면 멍청한 질문이었다) 두 분 모두 (내가 처한 환경에서는) 2년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 만남을 통해, 내가 개발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힌트를 정말 많이 얻었다. 다만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사용하시는 분들인데, 내가 두 분에게 어떤 인사이트나 도움을 드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이 들어, 헤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언젠가 두 분께 보답할 기회에 대비해서, 더 열심히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 강의 제작
전자책과 영상 강의를 만든 10개월의 경험을 정리한다.
전자책 -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실전 가이드
영상 강의 -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올인원 가이드 (통합편 / 학습편 / 취업편)
2-1. 전자책
연초부터 코로나 때문에 완전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되었고, 아낀 시간에 지금까지 미뤄둔 일을 처리하기로 계획했다. 그중 하나가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가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2019년부터 주변에 개발자가 되려는 지인들이 정말 많아져서, 나에게 개발자가 되는 방법에 관해 물어보는 경우가 잦았다. 그럴 때면, 지인들에게 대충 알려줄 수 없으니 내가 경험한 것들과 노하우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말하다 보니, 이 반복 작업을 대신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목록을 구성하고 글로 쓰기 시작했는데, 지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긴 시간(약 2개월)을 투자해 쓰다 보니 지인들에게만 공유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유익한 글이 되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 내가 읽은 책이 우연하게도 <부의 추월차선>이었기 때문에, 쓴 글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020년 4월 6일부터 인프런에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실전 가이드>라는 전자책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인프런 최초의 전자책 🙃) 약 10개월간 총 2,300개 이상 판매되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2-2. 영상 강의
하지만 전자책 특성상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도 간략하게 설명하게 되고, 아예 다루지 않은 내용도 많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아, 진짜 제대로 된 강의 하나 만들어보자
는 생각으로, 2020년 5월부터 영상 강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1 미술 시간에 동판 그리기(동판 부조)를 한 적이 있다.
미술 시간이 끝날 무렵, 제출하기 위해 내가 2시간 가까이 송곳으로 누르고, 긁고, 찍은 동판을 살펴보았는데, 조금만 더 확실하게 입체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내일 제출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동판을 집으로 가져갔다.
수행평가 점수에 포함되는 작품도 아니었고, 나는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고1 운동쟁이였기 때문에, 미술 과목 평가를 잘 받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조금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농구를 한 후에,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동판을 송곳으로 누르고, 긁고, 찍었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하다 보니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입체감이 나왔고, 더 했다가는 동판이 뚫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다음 날, 나는 동판을 미술 선생님께 제출했고,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내 동판을 미술실 벽에 걸어두셨다. 선생님께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본 동판 부조 작품 중에 가장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친구들은 대충해서 제출한 동판 그리기를,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동판에 입체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만족할 때까지 몰입했다.
그런데 영상 강의를 만들 때, 동판 그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초보자 대상의 강의인 만큼 적당히 만들어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영상 강의를 만드는 일은, 대충하면 죄를 짓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일이었다.
그래서 8개월이나 걸렸다. 심지어 첫째를 출산한 와이프와 함께 지낸 조리원에서도 강의를 제작했다. 8개월 동안 내가 이 강의를 왜 만들기 시작했을까
라는 후회를 수백 번도 넘게 했다.
하지만 강의를 만드는 중간중간, 와 이 내용은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대박이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 이 강의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만족할 수준이 아니면 멈추면 안 되는 동판 그리기와 다름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를 악물고 끝까지 만들었다.
내가 개발자가 되면서, 개발자가 된 이후에 쌓은 중요한 경험과 중요한 노하우들을 모두 쏟아냈다. 그렇게 총 22시간 22분에 달하는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올인원 가이드> 강의를 오픈했다.
이 강의를 만드는 일은, 내가 개발자로서 성장하는 것에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일이라 너무 힘들었지만, 죄책감 없이 끝낼 수 있어서 후련했다.
이 강의는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원하는 부분만 수강할 수 있도록
학습편(10시간), 취업편(12시간), 통합편(22시간)으로 나누어 오픈했다. 이 강의는 계속 업데이트하되, 2021년에는 개발자로서의 성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제 더는 학교 미술실 벽면에 걸려있지 않을 나의 동판은, 내 마음속 한쪽 벽면에 여전히 걸려있다. 그리고 이 강의는 내 마음속 동판 옆자리에 걸어두었다.
3. 이직
2019년 2월 초에 입사한 줌인터넷에서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근무했다.
2021년 2월 1일부터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3-1. 마음의 불씨
줌인터넷 신입 개발자로 같은 날, 같은 팀에 입사한 동기가 입사한 지 1년 6개월 만에 카카오 자회사로 이직하면서, 나 또한 이직에 대한 마음의 불씨가 생겨났다.
이미 팀원들이 많이 이직한 상황에서, 동기까지 이직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때마침 임백준 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아래의 글을 읽고, 성장은 주변 환경이 제공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
이라는 말씀에 조급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 맡게 된 뉴스줌 서비스의 리팩토링 작업에 열중했다. 지금까지 담당한 서비스 중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서비스였기 때문에, 이직에 대한 고민은 덜어두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3-2. 이직 결심
하지만 이직해야 할 이유는 계속 늘어만 갔다. 안정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나의 성향은 회사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회사의 문제라기보다는, 회사와 나의 핏(fit)이 맞지 않는 문제였다.
워라밸도 좋고 직원들도 유한 편이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내가 편한 걸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체육 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요즘 체육 교사들은 편하지 않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포기하면서 회사에 맞출 필요는 없고, 회사가 나 하나로 인해 바뀌지도 않는다.
이 명제를 선명하게 파악한 그 순간,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3-3. 나만의 기준 설정
이직을 결심하니, 모든 결정이 쉬워졌다. 가장 처음 한 일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었다.
우선, 내가 맡았던 괴물 같은 레거시 프로젝트의 리팩토링 작업을 정말 깔끔하게 끝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생각에, 야근도 많이 하면서 마무리를 잘하려고 노력했고, 결과가 좋았다. 그리고 아래의 기준을 정하고 이직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 회사와 팀에 대해 최대한 알아보고, 나와 핏(fit)이 맞을 것 같은 회사들에만 지원
- (나의 관심 분야 + 다수의 개발자분들로부터 구한 조언)을 기반으로, 지원 분야는 한 가지 도메인으로 통일
- 원하는 회사의 순위를 정해두고, 순위가 낮은 회사부터 지원
- 최종 결정은 와이프와 면밀하게 상의 후 결정
이렇게 기준을 정해두니,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었다.
- 무수히 올라오는 경력 개발자 채용 공고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 도메인이 통일되니, 면접 준비 범위가 좁아져 깊게 준비할 수 있었다.
- 순위가 낮은 회사에서의 실수를, 순위가 높은 회사에서는 피할 수 있었다.
- 지원한 회사들의 장단점을 와이프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놓친 부분을 발견하고 보완할 수 있었다.
이런 기준을 정하는 데에는 Jbee 님이 쓰신 이직기록 시리즈 글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3-4. 회사 선택 이유
2019년 여름에 방영한 <마당 있는 집>이라는 EBS 다큐멘터리를 보고, 와, 저렇게 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반, 근데 저기에서만 평생 살아야 하네..
라는 생각이 반이었다.
개발자라는 직업의 좋은 점 하나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함에 있어 장소의 제약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자유다. 그래서 개발자가 된 나는 한국에서만 일하고 싶지 않았고,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가 입사하기로 한 회사는, 아직 첫 출근도 안 했기 때문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개발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회사
다. 주변 개발자분들도 거기서 버틸 수 있겠어?
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언젠가 미국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싶은 나에게는 반드시 경험해 보고 싶은 문화를 가진 회사였고, 그래서 우선 순위도 제일 높았다.
실리콘밸리도 한국 IT 회사들이 가진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보상을 더 많이 주고, 더 높은 자유도에 더 강한 책임을 부여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들었다. 나는 높은 자유도에 강한 책임이 부여되는 문화 속에서 일하고 싶어이 회사를 선택했다. 보상은 덤
내가 언젠가 미국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는, 미국에 더 좋은 회사들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
에 속하기 때문이다. (삶의 모습과 관련해서는 이 글에 생각을 정리해 두었다)
앞으로 살아갈 삶의 모습
이 중요한 나에게는, 단순히 빡세지 않다고 알려진 회사
, 혹은 나의 Comfort Zone에서 벗어나지 않을 회사
들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물론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완성될 때쯤에는 Comfort Zone에 들어가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써 회사를 선택하는 것과, 좋은 회사에서 되도록 편하게 일하겠다는 마인드로 회사를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빡센 회사 = 좋지 않은 회사
라는 고정된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주변 개발자분들의 거기서 버틸 수 있겠어?
라는 질문에, 지옥행 야근 열차 타러 갑니다!
라고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설명하기 번거로우니..)
물론 진짜로 얼마 못 버티고 튕겨 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내가 그리는 삶의 모습을 수정할 기회가 될 거고, 높은 자유도와 강한 책임이 부여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시야도 생길 테니까.
4. 31살에 31권 읽기
4-1.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
2019년에 생일 선물로 책을 받은 적이 있다. 내 생일이나 남의 생일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평소에 잘 챙기지 못했던 지인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게 된 것에 약간의 죄책감과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는 생일을 맞은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책을 열심히 읽어오지 않은 탓에 어떤 책을 선물해 줄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책을 선물하면 되겠지만, 선물 받는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도움이 되는 책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누군가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보면 없다
고 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지인에게 좋은 책 한 권 추천해 줄 수 없는, 간장 종지마냥 좁고 얕은 내가 싫었다.
또한, 이종립 님의 연말 회고 모음을 보면 매년 70~80권의 책을 읽으시는데, 1년에 10권도 읽지 않고 살아온 내 삶의 방식은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2020년부터는 책을 열심히 읽기로 결심!
과거에 1년에 100권 읽기에 도전했다가 3권 읽고 포기한 경험을 거울삼아 소박한 목표를 고민하던 중, 내 나이가 31살이니 31권을 목표로 하면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는 마음으로 내 나이만큼 책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30일에, 『그리스인 조르바』 를 마지막으로 31살에 31권 읽기
라는 소박한 목표를 달성했다.
4-2. 다양한 분야 책 읽기
개발 공부를 시작한 2018년부터 2019년까지는, 정말 개발 서적만 읽었다. 그런데 요즘 개발자가 아닌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개발자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개발도 결국 이 세계가 돌아가는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더 큰 그림을 보면서 살아야겠다
는 일종의 위기감이 들었고, 개발 세계에 갇혀있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2020년에는 아래와 같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 책을 많이 읽는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책들 (특히 김진짜가 추천해 준 책들이 좋았다)
- 경제 활동을 통해 자산이 쌓이는 시기인 만큼 돈과 관련된 책들
- 나를 개발자의 길로 이끈
사업
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는 만큼, 사업 관련 책들- 개발 서적은 필요한 것들만 몇 권
- 유명한 장편 소설들
- 육아 관련 책들
- 건강 관련 책들
모든 책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니 내 인생의 방향에 대한 조언을 많이 얻을 수 있었고, 특히 문학 작품들을 통해 오랜만에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에는 개발 서적의 비중을 약간 늘리되,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을 예정이다.
4-3. 내 나이만큼 책 읽기?
나이가 들수록 읽는 책의 기대 효용이 낮아진다. 가령 내가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31살에 읽은 책에서 얻은 정보와 가치는 앞으로 69년간 활용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책을 내가 20살에 읽었다면, 그 책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11년은 더 활용할 수 있고, 50살에 읽으면 50년밖에 활용하지 못한다.
때문에 내 나이만큼 책 읽기 프로젝트가 좋은 점은, 책 한 권을 읽고 얻을 수 있는 효용이 매년 1년씩 낮아지는 것을 매년 1권의 책을 더 읽음으로써 조금이나마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하고 부정확한 계산이지만..)
물론 20~40대에 읽은 책이 인생의 방향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50대 이후에 읽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최대한 많은 책을 소비해야 복리 이자처럼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독서 말고도 해야 할 일들(연애, 취미 활동, 결혼, 육아 등)이 많은 시기에 책만 읽을 수는 없기 때문에, 본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책을 최대한 읽는 것을 1차 목표로 하되, 읽는 책을 1년에 1권씩 자연스럽게 늘려가며 떨어진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다.
내 나이만큼 책을 읽지 못하면, 나잇값도 못한다
는 느낌이 들어서,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효과도 있었다.
4-4. 밑줄치고, 서평 쓰기
책을 읽다 보면,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문장들이 있다.
-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문장
- 머릿속의 전구가
띵~
하고 켜지는 문장- 단어 선택과 비유가 멋진 문장
- 실용적인 정보가 담긴 문장
- 미처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기존 사실에 대한 문장
나는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지하철에서 읽을 때는 손톱으로 🙃)
그 페이지 하단 모서리를 접어둠으로써 나중에 다시 그 문장을 만날 준비를 해둔다.
그리고 밑줄 쳤던 문장을 다시 만나면, 십중팔구는 이 문장을 그냥 흘려보냈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내 빌어먹을 기억력은 기억하지 못했을텐데, 밑줄 쳐놓고 다시 읽어보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읽은 책 중에 좋았던 책들은, 짧은 멘트과 함께 내가 밑줄 친 문장들을 포함해서 서평으로 작성해뒀다.(서평 모음) 이제는 밑줄 친 문장들만 모아서 매년 하나의 블로그 글에 모아둔다.(2023년 수정)
이렇게 블로그에 작성해 둬서 좋은 점은, 내가 밑줄 친 문장들을 자주 곱씹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 블로그에 올려둔 걸 본인이 자주 보겠어?
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자주 보게 된다.
밑줄 친 문장들을 볼 때마다, 항상 새롭게 얻어가는 인사이트가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밑줄 친 문장들을 모아서 랜덤하게 트윗 해주는 트윗봇을 만들까 생각 중이다.
생각만 말고 실천을 해라!
4-5. 종이책을 읽는 이유
나는 책을 빌려 읽거나 전자책으로 읽지 않고, 종이책을 반드시 새로 사서 읽는다. 빌려 읽거나 전자책을 읽으면 내가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내용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 기록을 남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서재를 가지고 싶다. 그런데 서재라는 공간은, 서재가 존재하지 않는 시절부터 그 공간을 채울 알맹이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서관 책이나 전자책은 휘발성 알맹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갑자기 없어지더라도 (내 아버지가 30대 중반에 그러셨던 것처럼)
, 내 첫째 딸과 둘째, 셋째(?)가 나의 서재에서 무심코 꼽아들고 읽은 책에서, 내가 남긴 기록(밑줄)을 통해 나와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면 안 되고, 전자책이면 곤란하다.
하지만 종이책의 리스크는 내가 밑줄 친 부분 외의 부분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그 점은 내 자녀들이 가질 약간의 반골 기질(내가 그랬던 것처럼)
을 발휘해서 극복하기를 바라고(예상하고) 있다.
사실 문장에 밑줄 치고 내 생각까지 적어두고 싶었지만, 내 생각까지 적어둔다면 교류가 아닌 교육이 되어버린다. 그런 주입은 위험하고, 또 자녀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크기가 교육에 의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밑줄만 치기로 마음먹었다.
5. 딸바보 아빠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너무나 소중한 딸이 태어났다! 이름은 한수지 :)
5-1. 면접의 달인
대학교 졸업을 앞둔 취준생 시절, 어느 대기업 영어 면접에서 외국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과 자식을 키우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힘들 것 같은가?
당시에 27살이었던 나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주제였지만, 면접을 많이 보던 때라 가히 면접의 달인이라고 할 정도로, 어떠한 질문이라도 빠르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답변하는 훈련이 되어있었다. ㅋㅋ
나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라고 답했고, 그 이유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일이지만, 자식을 키우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여는 일(Opening a new door of my life)이기 때문
이라고 답했었다.
그리고 2020년 8월 26일, 내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게 되었고, 내 면접 답변은 정답이었다 :)
5-2. 육아!?
정말 새로운 문이 열린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 너무 바쁘다. 난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걸까
라고 푸념하던 나를 떠올리면, 피식-😏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결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로 사랑하고 각자 할 일 열심히 하되, 배우자는 성인이니까 자기 자신만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육아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존재가 생긴다는 것. 이건 정말 큰 변화다. 대격변 그 자체다.
계산을 해봤는데,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 시간은 육아 이전과 비교하여 정확하게 3분의 1로 줄었다. 평소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3시간이었다면, 이제는 1시간도 (와이프의 희생으로) 겨우 주어지는 꼴이다.
내 딸을 정말 사랑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사랑하게 되지만, 육아로 인해 급격하게 줄어든 자유 시간 내에서, 개발 공부와 강의 제작, 독서 등을 하려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고 조급한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케어하다 보면, 결국 내가 평소 자유시간에 하던 것 중의 몇 개는 무조건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연말에 이런 지옥과도 같은 일정이라도 나 자신에게 powering through
하자고 주문을 걸고 무작정 돌파했었다. 잠을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해서 결국 목표를 달성해 왔는데, 육아는 나 자신만 책임지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powering through
를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물리적인 시간 부족으로 평소에 하던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오면,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겪어보지 못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
하지만, 딸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스트레스 해소!
5-3. 행동 강령 만들기
하루 25분 실행하기: 하루를 대하는 14년차 개발자의 자세 이 글의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기존의 출퇴근 시간 3시간이 자유시간에 삽입되었다. 시간이 늘어난 만큼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루었나? 아니다. 시간이 늘어났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일(유튜브, SNS)에 쏟은 시간이 늘어났다.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시간 충분하니까 이거 하나만 보고 해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기 시작하면, 결국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샤워하면서 해결책을 고민했고, 행동 강령을 만들게 되었다.
룰은 간단하다. 생각부터 하지 않고, 행동 먼저 한 후 생각한다. 우선,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나는 주로 하고 싶은 일보다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일들을 우선순위에 두는데, 그러다 보니 영상 강의 만드는 것이 1순위가 되었다. (강의 제작을 빨리 끝내고, 하고 싶은 개발 공부를 마음껏 하는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다)
나의 행동 강령은 이런 식으로 동작한다. 자유시간이 되면, 무조건 강의부터 만든다. 강의 만들 기분이 아니라든지, 유튜브 영상들부터 보고 시작하겠다든지, 밀린 개발 컨텐츠부터 몇 개 읽고 시작하겠다든지, 이런 모든 핑계는 무시되고, 무조건 강의부터 만든다.
그러다 강의 만들 에너지가 다 소모되면, 그때 두 번째 우선순위인 책을 잡는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책 읽기가 고통스러워질 때쯤에는 그다음 우선순위로 넘어가는 식이다. 가장 중요한 강의 만들기에 모든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 이유는, 강의 만드는 것도 하나의 창작 활동이라서, 온종일 붙잡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내용이 부실해지고 제작 속도도 현저하게 느려지기 때문이다.
육아를 시작한 이후로 자유시간이 삼분의 일로 줄었을 때는, 아.. 이거 큰일인데.. 할 일을 아예 할 수가 없네..
라는 생각이었는데, 행동 강령을 만들고 실천한 이후로는, 줄어든 자유시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개발자 커리어를 위해 한창 열심히 공부하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육아를 하게 되어, 처음에는 육아하는 시간이 조금 아깝게도 느껴졌지만, 내 삶의 목적(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을 생각해 보니 개발자로 성장하는 것보다 딸과의 시간이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요즘에는 내 주변에도 비혼주의자들이 많지만, 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거나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보면,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6. 슬럼프? 공황 장애?
슬럼프와 공황 장애 경험을 정리한다.
6-1. 메이저리거 2년 차 슬럼프
메이저리그에 진입한 루키 선수들은 2년 차에 슬럼프를 겪는 경우가 많아서, 2년 차 슬럼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첫 시즌에는 선수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2년 차에는 1년 차 때의 데이터로 분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메이저리거들이 선수를 파악하고 대응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미 없는 데이터라는 의견도 많다)
내가 메이저리거도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분석하는 것도 아니지만,
서비스 회사에서 2년 차를 맞이했을 때 회사 업무와 웹 개발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분석이 되었고, 약간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획기적인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레거시 프로젝트의 버그를 잡는 일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경험들이 개발자로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개발자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지난 2년간 배배 꼬인 레거시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버그를 분석하고 해결했던 경험들은 어떤 개발을 하더라도 이 프로젝트보단 깔끔하겠지!
라는 자신감으로 되돌아왔다.
개발자로 일한 지 2년 차가 된 2020년 상반기에, 코로나로 인해 장기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슬럼프 비스름한 감정 변화가 찾아왔다. 슬럼프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실력이지만, 개발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개인적인 고민을 하게 되면서, 돌도 씹어먹을 기세로 성장에 열을 올리던 2018년과 2019년에 비해 다소 느슨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2020년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책들이 하필 사업을 종용하는 책들이었다. 내가 우연히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사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였고, 개인적으로 사업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남아 있었는데, 이 시기에 읽은 책들이 불씨를 확 살려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 각종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사업가들의 사업 스토리를 자주 시청했는데, (EO, 신사임당 등) 사업 스토리를 읽고 듣다 보니, 개발이라는 것이 다소 사소하게 느껴졌다. 응?
개발을 아무리 잘해도 결국 월급쟁이 직장인 아닌가?
라는 생각에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더불어 토비님이 페이스북에 남긴 아래의 개발 공부에 쏟아온 시간에 대한 소고가 나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
하지만 2020년 7월부터 다시 개발자로서 성장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는데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1. 코로나 이후 개발자의 길에 도전하는 수많은 지인들
- 사회 초년생은 물론이고, 커리어를 잘 쌓아가던 지인들까지 코로나 이후에 개발자의 길에 도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 졌다.
-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개발자의 길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니, 이미 개발자가 된 내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 그저 높은 곳만 바라보고 지냈는데, 나의 위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에 더 잘하는 개발자가 되겠다는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2. 동기의 이직
- 줌인터넷에 같이 입사한 동기가 카카오 자회사로 이직했다. 워낙 잘하던 친구라 빠른 이직은 예상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릴 때 열심히 달려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한 동기 덕분에 동기부여가 되었다.
- 같은 날 같은 팀에 신입 개발자로 입사한 동기가 이직했으니 나도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오히려 내 개발 실력을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게 되었고,
아직 내가 맡은 서비스(뉴스줌)에서 배울 것들이 남았다
는 생각이 들어 맡은 개발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6-2. 공황 장애
2020년 11월 중순쯤, 회사 업무와 육아, 강의 제작, 지금은 말할 수 없는 프로젝트, 연말까지 끝내야 하는 개인 프로젝트 등으로 정말 바빴다.
특히 11월 말까지 끝내야 하는 회사 업무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계속 재택근무를 하던 때라, 17평 작은 집에서 업무 공간이 분리가 안 된 상태로 아이의 울음소리 옆에서 일을 해야 했고, 회사의 원격접속 방식 특성상 반응 속도가 조금 느려서 일하기에 굉장히 답답한 환경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미세먼지가 일주일 내내 나쁨이었던 시기가 겹친 덕분에, 육아 때문에 헬스장에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밖에서 조깅도 할 수 없어서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없었다. 빡센 일정 속에서, 정말 일하다가, 아기 보다가, 강의 만들다가, 프로젝트하고,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서 바로 다시 일하고, 아기 보고, 강의 만들고, 프로젝트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정말 역대급으로 쌓였다.
게다가 아이는 시간을 정해두고 울지 않고, 나는 목표로 정한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인 점과 겹쳐서, 내 할 일이 남아있는데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 오면 급격하게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일하는 중에 심장 쪽이 먹먹해지더니 계속 한숨을 크게 내쉬어야 할 정도로 가슴이 붕 뜨기 시작했다.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었는데도, 가슴이 붕~
떠버려서 도저히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두뇌가 아니라 엉덩이 무게로 공부하던 나였는데 단 1분도 의자에 앉아있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몸 상태였고,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계속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내 증상들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스트레스성 공황 장애
와 가장 흡사했다.
나는 공황 장애가 많은 관심을 받는 연예인들만 겪는 것인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성 공황 장애는 그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질병이었다. 이미 공황 장애에 대한 지식이 있던 와이프가, 내일 당장 바다로 여행을 가자
고 했다.
할 일이 태산이었고, 할 일을 하고 싶었지만, 정말 의자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와이프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코로나와 미세먼지의 티키타카
로 한동안 운동을 전혀 못 한 상황에서, 일정 압박에 시달리면서 괴물 같은 레거시 코드를 혼자 상대하고, 5월 초부터 만든 강의를 연말에는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나만의 굳은 결심이 주는 압박이 겹치다 보니, 결국 무너져 버린 것이다.
평생 아파본 건 운동하다가 인대나 뼈가 다쳐서 정형외과에 수없이 들락거린 것이 전부였는데, 스트레스성 공황 장애를 경험해 보니 정말 내 몸뚱아리가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와이프와 내가 좋아하는 동해에 다녀왔고, 회사 업무 외에 나머지 일들은 우선 멈춰버렸다. 다행히 11월 말까지 회사 업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 뒤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나머지 일들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바다 여행을 권유했던 와이프 덕분!
작년에 TDD 강의를 수강하던 때에 번 아웃
의 느낌을 받았었는데, 올해의 상황에 비하면 훨씬 단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건 번아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올해 정말 진정한 번아웃을 경험하면서 스트레스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 몸을 상하게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육아를 시작하면 나 자신만 책임지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바쁨의 차원이 한 단계 높아진다. 이건 육아를 해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바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지만, 나 스스로 바쁜 삶을 택한 거라 뭐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전부 내 선택의 결과!
2021년에는 코로나와 미세먼지의 티키타카에도 끄떡없도록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겠다.
7. 그 외
정해진 주제는 없지만, 기록해두고 싶은 2020년의 기억들을 정리한다.
7-1. 균형 잡힌 삶 vs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이 3분짜리 짧은 영상에서 조던 피터슨 교수가 한 말에 정말 공감되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누구나, 특히 개발자라면 꼭 봤으면 하는 영상이다. (41초부터)
내 인생의 한 가지(커리어)가 150% 되길 원하는 삶
과, 내 인생의 다섯 가지(가족, 친구, 취미, 건강, 커리어)가 80%가 되길 원하는 삶
중에 후자가 더 풍요로운 인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하지만 인생은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
2020년에 분가, 육아 등을 경험하면서 계획했던 일들에 많은 차질이 생겼다. 당연히 내가 계획했던 일들보다 훨씬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을 경험할 필요가 없었다면, 커리어 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빨리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당연히 했었다.
하지만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서고,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 건강, 가족 및 친구 관계 이 3가지가 가장 우선이고, 취미 생활이 4번째, 경제적 자유가 5번째다. 사회적 지위나 커리어에 대한 욕심은 애초에 5순위 밖이다. 때문에 나는 한 분야에 최고가 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한다.
물론 개발자로서 성장하고자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우선순위는 가족과 건강, 친구에 밀리고, 취미 활동에도 밀린다. 개발도 취미가 되었지만, 직업으로서의 개발은 우선순위가 밀린다. 내일 당장 축구 시합 뛸래, 개발할래?
라고 물어본다면 난 축구를 선택한다.
그런데도 나는 개발자로서 꽤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급격하게 성장하지는 못해도, 균형 잡힌 삶 속에서 꾸준하게 할 자신 있기 때문이다.
7-2. 500억
코로나가 심하지 않던 2020년 초여름쯤, 대학교 운동부 후배가 연락이 와서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학번 차이(09학번-14학번)는 조금 나지만, 내가 군 복무와 어학연수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학교에 다니던 후배라 친하게 지냈었다.
무엇보다 나와 성향이 비슷했고, 진로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많이 가지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대기업에서 퇴사하고 사업을 하려 할 때, 이 후배는 안양까지 찾아와서 나의 사업 이야기를 궁금해했고 나에게서 무언가 배워 가려 했다.
그렇게 약 2년이 지나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후배는 벌써 사업을 시작했고, 큰 사업을 벌이는 스타트업에 6번째 멤버로 들어가서 지금은 팀원 20명을 두고 있는 부문장이 되어 있었다. 사업 분야도 겉멋과 어설픈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지속되지 않을 혁신을 꿈꾸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소비재 유통과 마케팅을 병행해서 돈 버는 것을 중점적으로 하는 회사였다.
당장 그 회사에서 나와서 자기가 사업을 시작해도 될 만큼 일을 배우고 익힌 상태며, 20여 명의 직원들과 3명의 팀장을 관리하면서 사람 다루는 일까지 경험하고 있었다. 그 후배는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소비재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 100여 명에게 콜드 메일을 보내서 만남을 요청했고, 그중 일부 사업가들과 만나서 조언도 듣고 인맥까지 쌓았다고 한다.
나에게 사업에 관해 물어보고 방향을 물어보던 후배였는데, 어느새 사업가로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후배가 자랑스러우면서도, 그날 온종일 에러 메시지를 구글링하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27살인 후배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50억을 벌고, 마흔 살이 되기 전에 500억을 버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전혀 어처구니없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런 패기와 열정, 실행력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혹시나 잘 안돼서 목표의 10%밖에 달성을 못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내가 우연히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도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고민이 많아지는 유익한 만남
이었다.
7-3. 황준일 님
2020년에 가장 열심히 살았던 지인을 한 명 꼽아보라면, 나는 고민 없이 황준일 님을 선택할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황준일 님의 주니어 개발자의 2020년 회고를 읽어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2019년 하반기에 줌인터넷 포털개발팀에 신입 개발자로 입사하셨던 준일님은, 나보다 개발을 훨씬 잘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도 개발자로서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모습을 1년 내내 보여주셔서 많은 자극이 되었다.
그런 준일님이 2020년 회고에서 나를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개발자로서 더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지금까지는 고개를 위로만 들고, 나보다 앞서간 개발자분들만 보면서 지냈는데, (개발 실력과 상관없이) 내 뒤에서 나를 보고 계신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준일 님을 통해 깨달았다. 본받기만 할 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책임감 비슷한 단어
가 내 어깨 위에 올라앉은 느낌이었다.
성장해야 한다. 나에게 본보기를 보이신, 앞서나간 분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꾸준히 성장해서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2020년에 더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8. 맺으며
한국 사람들은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좋은 학교에 입학한다고 천국이 펼쳐지는 게 아니고,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소속되는 것은 지속 가능한 행복이 아니다. 단지 삶의 모습 중 일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뛰어난 개발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살지 않았다. 나의 행복을 지속 가능하게 해 줄,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만들기를 목표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쓸모 있는 개발자가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쉬는 날에도 개발 공부하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유튜브 대신 개발 블로그를 본다.뛰어난 개발자 되기 레이스
에서 조금 뒤처진 나 같은 사람들은, 개발자로서의 성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각자 원하는 삶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2018년과 2019년의 내가 뛰어난 개발자 되기 레이스
에 참여했다면, 2020년의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만들기 레이스
에 참여했다고 생각한다.
개발자로서 성장하는 속도는 2018년과 2019년에 못 미쳤지만, 성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퍼즐에 비유한다면 2020년에는 퍼즐 조각을 꽤 많이 맞추었다. 그리고 2020년의 조각들은 내 인생의 마일스톤이 되어 앞으로 내 삶의 모습
이라는 퍼즐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그림으로 맞춰나가야 할지 도와줄 것 같다.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과 너무나 행복한 기억들이 공존했던 2020년이었다. 아쉬운 점들도 많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떳떳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2021년에는 또 어떤 고난과 역경과 행복과 웃음이 기다릴지 기대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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